[우닝워켄] 영원히 함께
츠키미님께서 그리신 만화 보고 각색해서 써봤어요! 제목은 츸님이 저장한 파일명에서 따옴.
근데 다 쓰고 다시 원본을 보니 각색을 넘어 많이 날조되어있군요.
이래서 사람은 기억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원본은 부끄럽다고 하시어 내렸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구나.”
가볍게 양장본 표지가 덮이는 소리와 함께 그 목소리도 끝이 났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브라우닝은 한쪽 눈을 떠 가만히 옆을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책이 일곱 권,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이 다섯 권. 방금 손에 들려있던 것이 떨어져 여섯 권. 비어버린 손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자 테이블에 놓인 것도 여섯 권. 방에 걸려있는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도 여섯 시.
언제부터 그가 이렇게 동화책에 몰두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서, 브라우닝은 입을 열었다.
“그만 읽게 워켄.”
그제야 줄곧 책으로 향해있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워켄.”
“하지만 브라우닝, 다음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보챈단 말일세.”
“아이들 누구?”
“누구냐니… 그거야 당연히 도니타와 쉐리─”
“─는 이제 없잖나.”
“거짓말…….”
“거짓말이 아닐세. 현실을 보게 워켄. 도니타와 쉐리는 여기 없네.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니야!”
거센 마찰음과 함께 입에서 비릿한 맛이 퍼지기 시작했다. 브라우닝은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원래 위치로 돌려놓으며 슬쩍 혀를 굴렸다. 뺨의 아픔은 익숙했지만 이번처럼 혀까지 깨무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뺨과 혀의 아픔보다도, 워켄의 행동 그 자체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눈물이 차올라서 흐릿해진 눈에도 그게 보이긴 한 것일까. 흠칫, 하고 흰 가운으로 감싼 어깨가 떨려왔다. 항상 이런 식이면서 왜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지.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아버린 워켄을 끌어안으면, 늘 그랬듯이 잇새로 새어나오는 울음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감겨오곤 했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도니타는, 쉐리는 여기에 있네 브라우닝…….”
그러니까 그 둘은 없단 말이야.
언제 되찾을지 모를 자네의 기억을 위해서, 사라져-케이오시움이 되어-버렸잖나.
「그 아이들을, 꼭 그렇게 희생시켜야 했나?」
「도니타와 쉐리는, 분명 닥터가 살아 만든 인형 중에서 가장 걸작일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는 건 너무하잖나! 분명 다른 방법을, 너는 알고 있었으면서!」
「말했잖아요. 그 아이들은 걸작이라고. 닥터의 지식과, 노력, 갈망, 무의식을 재구성한 결정체. 그러니까, 그 아이들의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만들어낸 케이오시움이어야 닥터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에요.」
「너는 우리들의 기분 같은 건 모르는구나.」
「그런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할 말을 잃은 워켄을 대신해 브라우닝이 찾아갔던 날, 무뚝뚝하던 인형의 목소리가 그렇게 서늘하게 들린 적이 없었다. 조금 이상하긴 해도 언제나 작고 귀엽다고 생각하던 인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워켄이 사용하던 침 따위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리해서,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만큼 워켄은 생각보다 강하지 못해서,
「여기 있잖아요. 이게……」
그 날카롭고 치명적인 한 마디─쉐리와 도니타에요─가 가슴에 박힌 워켄의 시간은 그날부터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기에 몇 번이고 일러줘도 알아듣지 못한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 브라우닝은 워켄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가슴 깊이 그를 끌어안았다. 가슴이 축축해지는 감각 역시 이제는 익숙했다. 인형보다도 더 인형 같다 여겨지던 사내가 우는 모습도 이제 그렇게 놀랍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브라우닝도, 워켄도, 이미 지쳐있었다.
“이제 지칠 때도 되지 않았나 워켄.”
“다음 책은 백설공주가 좋겠구나.”
“그만 하게 워켄.”
“옛날 옛날에”
“괴로운가? 워켄?”
“…한 나라의 왕비님은 아이가 없어서”
“워켄, 제발.”
“…눈처럼 흰 피부와 흑단 같은 머릿결……”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리고 피처럼 붉은 입술…… 아…?”
“그리고 이게, 내가 잘하는 일인지 솔직히 확신할 수 없네.”
탄환이 지나간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워켄의 피는, 동화책의 그것처럼 붉지는 않았다.
“아, 아파…아파, 아파 아파 아파……어째서, 브라우닝……?
“워켄.”
“브라우닝, 아파, 어째서… 나, …죽어…버리는…….”
“아니, 아닐세. 죽지 않아. 오히려 다시 살아났지.”
그래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우 한 번 쏘았을 뿐인데, 워켄의 시간은 멈춰버린 그 날로부터 단숨에 자신의 옆까지 다가온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오토마타 소녀들 대신에 지금 존재하고 있는 자신에게로. 왕자님의 키스 대신에 탐정이 당기는 방아쇠로 워켄은 눈을 뜨고 조금씩 현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지금 옆에 누가 있는지 아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워켄.”
브라우닝이 워켄의 가슴께를 지그시 누를 때마다 왈칵, 워켄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평소라면 아군의 체력을 회복하는 데 쓰였을 피인데, 지금은 그저 두 사람의 옷과 바닥을 더럽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있었다. 워켄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상처를 헤집고 있는 브라우닝의 손을 잡으려 들자 브라우닝은 한 발 더, 워켄의 어깨에 방아쇠를 당겼다.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워켄을 보며 브라우닝은 웃었다. 미안하네, 하지만 괜찮아. 다 자네를 위한 거야.
“싫어, 이대로는 내,가, 사라져…….”
“걱정하지 말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쉐리와 도니타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잖나. 그럼 자네도 사라지는 게 아니야.”
“…다음, 다음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피가 맺혀 갈라진 목소리가 다시 책장 위를 맴돌고 있었다. 세 번째 탄환은 손등을 맞췄다. 이것으로 더는 동화책을 들고 읽을 수 없을 터였다. 워켄이 다시 망상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네 번째, 다섯 번째 총성이 들릴 때마다 삽화의 눈밭은 동화 속 왕비님의 피 대신에 워켄의 피로 물들어갔다.
괴로워 보이지만, 이것이 최선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비명이 질러질 때마다 계속해서 워켄과 자신에게 되뇌었다. 아픈 게 아니네, 죽는 것도 아니야. 피와 함께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면서 브라우닝은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그러니 좀 더 나를 봐주게.
“…브라우닝…….”
“자네 소원은 내가 들어줄 테니까.”
마지막 한 발을 쏘았을 때, 워켄은 브라우닝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욕심부려도 괜찮지 않겠나.”
완전히 빛을 잃은 눈을 바라보면서, 브라우닝은 차갑게 식은 입술에 자신의 입을 포개었다.
“……이제 편히 쉬게, 워켄.”
“닥터는 어디에 있어요?”
“여기 있잖나.”
“나는 닥터를 그렇게 만든 기억이 없는데요.”
“내가 그렇게 했네.”
인형의 눈은 브라우닝의 손에 가 있었다. 말갛게 빛나는 흰 조각은 원래 브라우닝이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형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되물을 뿐이었다.
“왜 그랬어요?”
“워켄이 원하던 일일세.”
“이해가 안 돼요.”
“이걸로, 이제 워켄은 아프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으니까. 죄책감도 느끼지 않아.”
“닥터가 원하던 건 쉐리와 도니타와 함께 사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잘 알면서 잘도 그 소원을 박살 내놨군.”
브라우닝은 워켄-케이오시움-을 손수건으로 싸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하고 입에서 내뿜는 연기가 흩어지는 방에는 더는 워켄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오묘한 색으로 젖어버린 동화책 한 권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인형은 그것을 주워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기기 시작했다. 대답하지 않는 탐정 대신에 그 책이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 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지막 기억을 찾을 때에는 케이오시움 세 개가 필요하다고 했지?”
“네.”
“도니타와 쉐리, 그리고 워켄으로 만든 케이오시움은 내게 써주게.”
“어째서?”
“그게 워켄의 소원이라고 했잖나. 그 날이 되면, 워켄은 내 안에서, 쉐리와, 도니타와, 그리고 나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래, 그거야.”
“역시 잘 모르겠어요.”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어.”
얼룩지지 않은 마지막 페이지의 한 구절. 인형도, 브라우닝도 한동안 그 문장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이야기구나.
Happy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