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냐. 도원결의라는 걸 했단 말이지.”
마침 오늘 후식으로 나온 것이 잘 익은 복숭아이길래 이야기를 꺼냈을 뿐이었다. 말하고 나서야 실언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왜냐하면 이야기의 출저가 여간해서는 남에게 함부로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 돈형이 드물게도 주는 것 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슬쩍 하후돈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대낮부터 얼근하게 취해있던 하후돈은 별다른 노기 없이 부드럽게 웃어 보이는 평소의 하후돈이었다. 목침 하나를 괴고 비스듬히 누워 특유의 긴 머리카락을 한데 그러모은 채로 조조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건너편으로 보이는 지붕 위에서 낮잠을 청하는 고양이와 비슷해 보여 조조도 그만 같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고양이라니. 형님은 굳이 따지면 늑대 같은 남자지. 언제나 듬직하고, 강하고.
“조조야.”
예쁘긴 하지.
“맹덕.”
“…….”
“…아만?”
그래. 이야기해보게. 풀어진 발음으로 계속해서 불러대는 것이 어쩐지 귀여워서 조금 더 듣고 싶었지만, 저 미소에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조조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하후돈은 눈꼬리를 살짝 접었다. 조조는 어쩐지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 쟁반 위로 시선을 돌려 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복숭아의 뽀얀 껍질마저 눈앞에 있는 사내의 피부를 닮은 것 같아 다시 귀 끝이 빨개지는 건 필시 자신도 같이 술을 마셨기 때문이라고 애써 생각하면서.
“그래서 부럽더냐, 도원결의라는 것이.”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복숭아를 보니 문득 떠올랐을 뿐이네.”
“나는 복숭아 하면 복숭아 소녀가 떠오르는데 말이다. 어릴 적에 우연히 복숭아 소녀 이야기를 듣고는 그날 네게 복숭아를 쥐여준 내게 '형님도 매일 복숭아만 먹어서 복숭아 향기가 나는 형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가 어르신들게 크게 혼이 났었지.”
“아, 그 이야기는 그만하게. 난 그때 그런 여자아이들이 뭘 하는지 몰랐단 말일세. 그리고 내가 열 새 하늘 아래에는 그런 아이들이 없게 하겠어.”
“그래, 그렇구나. 그래야 우리 조조답지. 그럼 우리도 도원결의를 할까.”
“꽃이 진 지가 언제인데 도원결의를 하는가. 뭣보다 우리 집에는 복숭아나무가 없네.”
“뭐 어떠냐, 내가 복숭아 형님은 되지 못해도 복숭아 맹세는 해주마.”
“무엇을 하려고.”
조조의 물음에 답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계속해서 잔잔히 웃기만 하던 하후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조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만 움직여 조조의 손에 들린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백도로구나. 웃는 모습이 두근두근하도록 달았다. 겹쳐진 입술만큼이나, 보드랍고 어여뻤다.
“어떠냐.”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가.”
“복숭아 결의란다. 도원결의에서 정원만 빠졌구나.”
“그들이 이런 식으로 의형제를 맺었을 리 없잖나.”
“그래서 싫으냐?”
“싫다고는 하지 않았다.”
“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꽃도 여기 있고.”
“제법 농을 던질 줄 알게 되었구나. 맹덕.”
술기운에 도화 빛으로 물든 양 뺨을 꽃잎 만지듯 조심스럽게 쓸자 가만히 손바닥에 뺨을 부벼온다. 어째서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걸까 이 사람은.
“맹세하마. 천하가 너를 버려도 나는 네 곁을 지키겠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진 않네. 하지만 천하를 버려도 형은 버리지 않아. 맹세하지.”
“말로만 하는 것이냐.”
“행동으로도 보여주어야지. 내가 누군가.”
“나의 조조지.”
“그래, 돈형의 조조야.”
입술을 술잔 삼고 그 안에 고인 과즙을 술로 삼아, 그렇게, 은밀한 결의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