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히도 어리광이 심한 고양이었다. 아깝지만 그만 피워야겠지. 마지막 한 모금을 급하게 빨곤 재떨이에 담배를 완전히 비벼 끈 후에 파티션으로 가려놓은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작은 고양이는 거기까지 쫓아와서 놀아달라 보챈다. 적적한 집에 들어온 새 식구는 꽤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해댔다. 저래놓고 자기가 귀찮을 땐 방석 위에서 눈도 끔쩍 안 하는 이 새끼고양이는, 전형적인 고양이의 특성에 어린아이의 제멋대로인 점이 딱 반반씩 섞여 있었다.
“그래, 뭘 하고 놀아줄까?”
“책 읽어주게.”
영상보다는 활자에 더 큰 흥미를 느끼는 이 탐정의 고양이는 동물, 그중에서도 여러 종류의 가축이 그려진 동화책을 앞발로 탁탁 쳐대며 눈을 데굴거린다. 온갖 사건들이 나열된 서류뭉치 옆에 놓인 샛노란 표지는 가벼운 뒷조사에서부터 음험한 거래가 오가는 사무실과는 어울리지 않게 산뜻한 색이었다.
“브냐우닝! 어서!”
“몇 번이나 읽어줬는데 질리지도 않는가 보지 워켄.”
“하지만 동화책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나.”
“하기야,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브냐우닝, 여기 나오는 톰은 왜 닭이랑 병아리랑 소랑 양이랑 오리를 데리고 가는거냥? 집도 좁아서 쫓겨나지 않았냥.”
“아마 키워서 먹으려는 거 아닐까.”
“먹어? 톰은 사냥을 한거냥?”
“사람은 사냥하지 않아도 가축을 길러서 잡아먹으니까. 그나저나 확실히 이 동화책 스무 번은 더 읽어준 것 같은데 내일은 새 책을 사다 줄까.”
“새 책…… 물고기가 나오는 책이면 좋겠다냥!”
물고기는커녕 아직 사료도 못 먹는 아가냥이 주제에 어디서 본 건 있는 모양인지 물고기 노래를 불러댄다.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점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조심스럽게 워켄이라고 이름 붙인 새끼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퍽 마음에 든 건지, 워켄은 조그만 머리를 비벼대며 갸릉거린다.
그러니까, 분명 어제까지 저렇게 웃고 놀았을 텐데.
새로 산 책과 인형, 분유를 들고 돌아왔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불을 켜고 찬찬히 거실을 훑어보자 아니나다를까, 멋대로 자기 거라고 정해버린 방석 위에서 웅크려 잠들어있는 워켄이 있었다. 어째 평소랑 자는 포즈가 다른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워켄- 하고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워켄, 오늘은 집에 두고 가서 삐졌나? 하지만 쇼핑을 할 거니까 넌 데려갈 수 없다고 말했잖아.”
“브냐우닝…….”
“자, 새 책도 사왔고 장난감도 사왔으니까. 일어나. 아니면 어디가 아픈가?”
“브냐우닝… 우에에에에엥!”
머리까지 콕 처박고 있는 폼이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 옆으로 다가가 톡톡 건드리자 별안간 울음이 터져나온다. 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억지로 몸을 뒤집게 만들었더니 조막만한 손톱으로 생채기를 내고는 다시 엎드려버린다. 동물병원에 가봐야 하나. 방석째로 들어 옮길 생각을 하며 짐을 내려놓는데, 별안간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지금까지 고마웠네. 맛있게 먹게 브냐우닝…….”
“먹어? 누구를?”
“나, 잡아먹을 거 아닌가?”
“아니 내가 왜 너를 잡아먹는다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브냐우닝이, 사람이 닭을 키우는 건 닭을 먹기 위해서고 소를 키우는 건 소를 먹기 위해서랬으니까, 브냐우닝이 나를 키우는 이유는……으에에에에에에에에엥!”
“아니 이거 참…….”
그제야 방석 옆에 널부러진 동화책과, 오늘 아침 워켄이 나를 배웅하면서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브랴우닝, 브랴우닝은 나를 키우는 건가?’ 부모라도 그리워진걸까 싶어 힘차게 대답해주었더랬다. ‘물론이지! 내가 네 주인이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를 거야.’
그걸 그 뜻으로 해석하다니.
상황파악이 끝나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없는 동안 키운다는 의미를 곱씹어보면서 계속해서 책을 뒤적거렸을 작은 고양이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지금도 저렇게 울먹이면서, 제 딴에는 큰 결심을 하고 목을 내어놓는 거겠지. 나 참, 같이 살았으면 얼마나 같이 살았다고 그동안 즐거웠네. 라는 건지. 미처 벗지 않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핸드폰을 꺼내 었다.
“그런가. 나에게 먹혀주려고 이렇게 예쁘게 기다리고 있었구나 워켄.”
“먹을 거면 빨리 먹게. 어려서 먹을 건 없지만 그래도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럼 마지막 유언은? 죽기 전에 하는 말이야.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서 기록해놔야지.”
“브냐우닝… 내가 없어도 밥 굶지 말고, 그 이상한 연기 나오는 거 계속 갖고 놀지 말고, 우유는 꼭 따듯하게 데워서 마시고, 그리고, 그리고, 정말 좋아하네 브냐…후에에에에에에 브냐우닝! 브냐우니이이이이잉!”
“그럼 마지막으로 꼭 안아주기 할까?”
“응……!”
나중에 워켄이 어른냥이가 되면, 그 때 보여줘야지. 품 안에서 서럽게 우는 워켄을 보면서, 나는 조용히 버튼을 눌러 클라우드 서버에 동영상을 업로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