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닝은 평소처럼 인형의 여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미 죽은 몸이라 폐암이라든가 간접흡연으로 인한 기관지염에 걸릴 일은 없었지만, 그 연기의 냄새만큼은 똑같이 독했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먼저 몸에 배게 만든 습관이었다.
담배 연기를 내뿜던 브라우닝은 문득 자신의 옆에 있는 창에 시선이 갔다. 보통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던 것이 오늘은 창문까지 활짝 열려있었다. 이런 곳에서 햇빛을 받으려고 열어두었을 리는 없고, 환기라도 시킬 셈인가 싶어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 누군가가 있다면 아무래도 담배를 끄든지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겨야 할 테니까. ‘아직 반절이나 남았는데 말이지…….’ 손가락으로 툭툭 담뱃재를 떨어트리며 보니 얇은 공책 몇 권이 쌓여있는 테이블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작은 가구들이 옹기종기 배치되어 있었다. 어린 전사들의 방이라면 서둘러 자리를 피해 주는 게 맞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의자 안에서 튀어나온 두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확실히 짧고 가느다란 아이의 다리였으나, 브라우닝은 두 다리의 미묘하게 꼿꼿하고 정적인 움직임을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의자에 푹 파묻혔던 몸을 일으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반짝이는 무기질의 것이었다.
*
“워켄!”
방문을 벌컥 열며 외치자 흠칫 놀라는 뒷모습에 그제야 조금 멋쩍은 마음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머리만 덜렁 남은 도니타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던 듯한데, 놀라던 표정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짧은 시간 동안 불쾌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아, 그러니까, 저기, 미안하네……. 재빨리 사과하며 조용히 문을 닫자 워켄의 표정은 다시 평소와 같이 무뚝뚝한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누가 저 남자는 표정이 없다고 한단 말인가. 저렇게 다양하게 변하는데. 그게 좀 부정적인 영역이긴 해도. 코트를 벗어 걸다가 갑자기 피식 웃는 브라우닝을 보며 워켄의 눈썹이 티나지 않게 조금 움찔거렸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지.”
“아, 그게 말이야 이번에 내 새로운 기억을 찾게 된다고 들어서.”
“축하를 바라는 건가?”
“말하자면 그렇지.”
“축하하네. 그리고 앞으로는 좀 더 조용히 축하해달라고 하고.”
“매정하구먼. 이번에야말로 자네와 나의 연결고리 같은 게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니까.”
어지간히도 매정한 페어였다. 하기야, 이 남자에게 다정한 웃음이라든가 자신처럼 호들갑을 떨며 축하의 말을 들을 거라는 기대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워켄의 반응은 정확히 브라우닝의 예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실로 워켄스러운 대답이라서, 브라우닝은 아쉬운 와중에도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워켄, 만약에 내 세 번째 기억에서 우리 사이가 아주 나쁘게 나오면 어떻게 할 텐가?”
“의도를 모르겠는 질문이군.”
“그냥, 만약에. 만약에. 라는 거지.”
워켄은 답이 없었다. 도니타를 점검하던 손이 멈춰있는 걸로 봐선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가설을 세우고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무얼 물어보든 웬만해서는 쓸데없는 질문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이 워켄의 좋은 점이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브라우닝은 제법 흥미로운 눈으로 워켄을 바라보았다. 입술이 열릴 듯 말 듯 두어 번 달싹이더니 조금 뜸을 들이다 열렸다.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된다네. 지금까지 안 나왔으니까.”
“자네답지 않은 대답인걸. 그리고 희망을 좀 가지게.”
“우리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더라도 서로 알게 되는 걸 희망이라고 부른다면, 자네는 상당히 긍정적이군. 브라우닝.”
“아니 꼭 뭐 그렇다기보다는. 그럼 자네는 우리가 영원히 남남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건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나는 어차피 자네와의 관계 말고도 생각해야 할 게 많으니까.”
워켄의 손이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쁠 때 건드려서 짜증이 난 건가. 평소 이상으로 조금 더 무심한 대답에 브라우닝은 터덜터덜 침대로 걸어가 앉았다. 읽을 책이라도 들고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공교롭게도 책꽂이는 워켄의 뒤편에 있었다. 새삼 저쪽으로 다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담배를 피우러 나가기도 싫었고, 잠을 자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그저 가만히 워켄의 기분이 언제 풀리려나 하고 지켜보는 것밖엔 도리가 없어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워켄의 손에서 공구가 내려놓아 지고 금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겨주는 게 이제 슬슬 끝나가는구나 싶어 다시 말을 걸어보려는 찰나, 그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워켄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나는 자네 말고도 생각할 게 많네.”
“응. 그랬지.”
“그러니까 새삼 자네와 나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얽히면 곤란해. 될 수 있으면 나는 우리의 관계가 지금같이 유지되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그것도 꽤 의외의 대답이군.”
“그쪽이 내게 효율적일 뿐이야.”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워켄은 점검이 끝난 도니타의 머리를 흰 천으로 감싸들었다. 도니타의 방에 다녀오지. 조용히 문을 열고 조용히 문을 닫는 동작은 참으로 세심했다. 그제야 브라우닝은 긴장을 풀고 침대에 편히 드러누울 수 있었다.